니므롯은 홍수 이후 새로 시작된 인류의 지도 위에, “힘을 가진 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오래 남은 이유는 업적의 화려함보다, 그가 선택한 힘의 방향이 공동체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만약 네가 그때 그 땅에 있었다면, 너는 니므롯을 영웅이라 불렀을까, 아니면 조심해야 할 사람이라 느꼈을까?
홍수가 지나고, 땅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씨를 뿌리고, 짐승을 길들이고, 강가에 움막을 세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무엇이든 불안하다. 오늘의 평화가 내일도 이어질지, 저 숲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이웃이 내 곡식을 노리지 않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 세상에서 누군가는 칼을 들고, 누군가는 울타리를 높이고, 누군가는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 니므롯의 자리는 바로 그 틈에서 생긴다. (참고: 창 10:8-12)
성경은 니므롯의 가계를 짧게 소개한다. 그는 함의 후손, 그리고 구스의 아들로 기록된다. “누구의 아들”이라는 말은 단순한 족보가 아니라, 그가 어떤 세계 한복판에서 태어났는지를 알려주는 힌트다. 홍수 이후의 세계는 다시 분열과 재배치가 진행되는 중이고, 각 가문은 자기 자리와 생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니므롯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기대는 힘”이 무엇인지 일찍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참고: 창 10:6-9)
그의 첫 선택은, 힘을 어디에 쓰느냐였다. 사냥을 잘한다는 건 단지 짐승을 잡는 기술만이 아니다. 흔적을 읽는 눈, 밤의 소리를 구분하는 귀, 위험을 앞에서 받아내는 담력,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 속에서도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말”이 필요하다. 니므롯이 사냥에 뛰어들었을 때, 그는 먹을 것을 얻는 길을 택했을 수도 있고, 동시에 사람들의 존경을 얻는 길을 택했을 수도 있다. 너라면 굶주린 공동체 앞에서, 먼저 배를 채우는 사람이 되고 싶겠니, 아니면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되고 싶겠니?
성경은 그를 “여호와 앞에서 강한 사냥꾼”으로 부른다. 이 표현은 찬양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떤 맥락에서는 경계의 표식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사람들 앞에서만 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자리에서도 크게 드러났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런데 크게 드러난다는 건 언제나 위험을 품는다. 힘은 빛처럼 따뜻하지만, 그림자도 길게 만든다. (참고: 창 10:9)
“그는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여호와 앞에서 니므롯과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세기 10:9, 개역개정)
속담이 된 사람은,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이다. 이는 곧 니므롯이 단순히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이야기거리였다는 뜻이다. 어떤 이에게 그는 맹수로부터 사람을 지켜낸 구원자였을 수 있다. 또 어떤 이에게 그는 사냥감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움켜쥐려는 권력자였을 수 있다. 같은 일을 두고도 평가가 갈린다면, 그 사람은 이미 영향력의 중심에 서 있다. 너는 네가 존경하는 사람의 힘이, 나를 살리는 힘인지 나를 묶는 힘인지 어떻게 구분하니?
니므롯의 다음 선택은, 혼자 강한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강한 무리를 만들 것인가였다. 사냥은 혼자도 가능하지만, 도시와 왕국은 혼자 만들 수 없다. 사람을 모으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의 안전이 누군가의 명령에 달리고, 누군가의 생계가 누군가의 분배에 달린다. 니므롯이 사람들을 모았을 때, 그는 아마 “질서”를 약속했을 것이다. 흩어진 이들을 모아 울타리 안에 두면, 짐승도 도적도 막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울타리는 보호가 되기도 하고, 감금이 되기도 한다. 너라면 보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자유를 내어줄 수 있겠니?
성경은 그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영걸”이 되었다고 말한다. 처음이라는 말은, 기준이 세워졌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전에도 강한 이들을 보았겠지만, 니므롯은 ‘힘을 제도처럼 굳히는 방식’을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맥락상 그는 맹수를 사냥하는 손으로, 도시에 질서를 세우는 지팡이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도가 생기면 편해지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뜻이 오래 남는다. 네가 만든 규칙이 사람을 살릴까, 아니면 네 이름을 남길까?
니므롯의 이름이 특히 연결되는 곳이 “시날 땅”이다. 그 땅에서 그의 나라의 시작이 바벨, 에렉, 악갓, 갈레 같은 도시로 언급된다. 도시는 곡식과 물이 모이는 곳이고, 거래와 소문이 오가는 곳이며, 권력이 자라는 곳이다. 니므롯이 도시를 세우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는 ‘흩어져 살던 방식’에서 ‘모여 사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려 한 셈이다. 이 선택은 생존에 유리했을 수 있지만, 동시에 한 곳에 모인 사람들은 더 큰 한 번의 재앙에도 취약하다. 너라면 위험을 분산시키는 삶과, 힘을 모으는 삶 중 어느 쪽을 택하겠니? (참고: 창 10:10)
도시를 세우는 일에는 또 다른 갈등이 따라온다. 누가 땅을 차지하고, 누가 물길을 관리하며, 누가 성벽을 쌓을 것인가. 누군가는 일하고, 누군가는 지켜보고, 누군가는 세금을 거둔다. 니므롯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는 “공평”을 말했을까, “효율”을 말했을까, 아니면 “위험한 시대엔 강한 손이 필요하다”고 말했을까. 이 말들은 모두 그럴듯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너는 리더의 말보다 무엇을 보고 그 사람을 믿니, 약속의 문장일까, 아니면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일까?
성경은 니므롯의 이름과 바벨을 가까이 둔다. 바벨은 훗날 “사람이 하늘을 향해 자기 이름을 높이려 했다”는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다만 니므롯이 그 일의 주역이었다고 성경이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한 관점으로는, 도시와 이름과 권력이 한데 모이는 지점에서 니므롯 같은 인물이 영향력 있는 상징이 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사람들이 높은 탑을 꿈꿀 때, 그 꿈을 밀어 올리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너는 큰 꿈이 시작될 때, 그 꿈이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인지 ‘누군가’의 이름을 위한 것인지 어떻게 알아차리니? (참고: 창 11:1-9, 창 10:10)
그에게도 관계가 있다. 그는 홀로 등장하지 않는다. 구스라는 아버지, 함이라는 조상,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로 갈라진 큰 가족의 기억이 배경에 깔려 있다. 같은 홍수의 생존자들인데도, 이후의 길은 서로 달라진다. 어떤 가문은 흩어지고, 어떤 가문은 모인다. 니므롯이 모으는 길을 택할 때, 그것은 다른 길을 택한 이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도시가 커지면 경계선이 생기고, 경계선은 갈등을 낳는다. 너는 가족과 공동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려고 할 때, 어떻게 화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창세기 10장의 기록은 니므롯이 “왕국”의 시작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왕국은 단지 땅의 넓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상태다. 그 방향을 맞추려면, 누군가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이곳에서 안전하다” “우리는 다른 무리와 다르다.” 이런 말들은 불안을 달래기도 하지만, 외부를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니므롯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속담이 될 정도였다면, 그의 말과 방식이 사람들의 기억을 흔들었을 것이다. 너는 공동체의 이야기가 너를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밀어내기도 한다는 걸 느껴본 적 있니? (참고: 창 10:8-12)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앗수르”와 연결된 구절이다. 어떤 번역과 해석에서는 니므롯이 시날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 같은 도시들을 세웠다고 읽히기도 하고, 다른 관점에서는 앗수르가 시날에서 나가 그 도시들을 세웠다고 보기도 한다. 성경의 짧은 문장이 우리에게 확정 답을 주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질문이 남는다. 만약 니므롯이 더 넓은 땅으로 확장했다면, 그는 안전을 위해서였을까, 명성을 위해서였을까. 반대로 그가 아닌 다른 세력이 도시를 세웠다면, 니므롯의 힘은 어디까지였을까. 너는 네 영향력이 끝나는 지점을 인정하는 게 쉬운 편이니, 아니면 더 멀리 뻗고 싶니? (참고: 창 10:11-12)
니므롯을 둘러싼 선택의 장면들을 하나씩 상상해보자. 첫째, 그는 위험한 숲으로 들어갈지, 안전한 들에 남을지 선택한다. 들어갔다면 용기가 있었고, 남았다면 책임이 있었을 것이다. 둘째, 그는 사냥감을 나눌지, 쌓아둘지 선택한다. 나눴다면 신뢰가 생기고, 쌓아뒀다면 두려움이 자란다. 셋째, 그는 사람들을 훈련시킬지, 경쟁시킬지 선택한다. 훈련은 공동체를 만들고, 경쟁은 충성심을 만든다. 넷째, 그는 도시의 문을 넓힐지, 좁힐지 선택한다. 넓히면 교류가 생기고, 좁히면 통제가 쉬워진다. 이런 선택들은 겉보기엔 사소해도, 끝내 한 시대의 공기까지 바꾼다. 너는 작은 선택이 큰 결과를 만든다는 걸 어디에서 배웠니?
다섯째, 그는 자기 이름을 앞세울지, 공동체의 이름을 앞세울지 선택한다. “니므롯의 도시”가 되면 빠르지만, 사람들은 지도자가 바뀌면 흔들린다. “우리의 도시”가 되면 느리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지킨다. 여섯째, 그는 반대하는 목소리를 들을지, 잠재울지 선택한다. 반대는 불편하지만, 때로는 재앙을 막는다. 일곱째, 그는 외부의 낯선 이들을 받아들일지, 쫓아낼지 선택한다. 받아들이면 위험이 늘 수 있지만, 지혜도 늘 수 있다. 쫓아내면 질서는 단단해지지만, 마음은 굳어진다. 너는 공동체가 낯선 이들을 대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안전일까, 자비일까, 아니면 둘 사이의 균형일까?
여덟째, 그는 “높이 쌓는 일”을 선택한다. 높이 쌓는다는 건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다. 높은 벽, 높은 탑, 높은 이름. 아홉째, 그는 자신이 만든 질서를 신앙처럼 만들지, 신앙 앞에서 질서를 겸손히 둘지 선택한다. 질서가 우상이 되면, 사람은 규칙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킨다. 열째, 그는 후대에 무엇을 남길지 선택한다. 평화의 길을 남길 수도 있고, 두려움의 구조를 남길 수도 있다. 니므롯의 기록이 짧은 건,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름”보다 “방향”을 보라고 하시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너는 네가 남기고 싶은 것이 결과니, 아니면 방향이니?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기억은 단순해진다. 누군가는 니므롯을 “강한 사냥꾼”으로만 기억하고, 누군가는 “바벨의 상징”으로만 기억하려 한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한 줄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어느 날은 공동체를 지킨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또 어느 날은 공동체를 자기 뜻에 맞추려 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건, 인물을 한 단어로 가둬버리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 자신도 한 단어로 변명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는 누군가를 쉽게 규정해버린 적이 있니, 그리고 그때 무엇을 놓쳤을까?
성경의 다른 곳에서 “니므롯의 땅”이라는 표현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미가서는 앗수르의 위협을 말하면서 “니므롯의 땅”을 언급한다. 이것이 역사적 기억의 상징인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관용인지 해석은 다양하지만, 적어도 니므롯의 이름이 ‘권력의 땅’ 같은 이미지와 연결되어 전해졌음을 보여준다. 이름이 지명이 되는 순간, 한 사람의 삶은 개인을 넘어 시대의 상징이 된다. 너는 네 이름이 어떤 의미로 기억되길 바라니? (참고: 미 5:6)
니므롯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은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쓰러졌는지, 왕좌에서 늙었는지, 혹은 더 큰 권력 다툼 속에서 사라졌는지 우리는 모른다. “성경은 여기까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자체가 메시지일 수 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흥망성쇠를 기사처럼 길게 기록하기보다, 그 사람이 남긴 방향과 열매를 우리에게 보이신다. 너는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할 때, 결말을 먼저 보니, 아니면 과정에서 드러난 마음을 보니?
니므롯의 퇴장은 조용하지만, 여운은 남는다. 한 관점으로는, 그는 불안한 세상에 질서와 안전을 제공하려 했던 사람일 수 있다. 다른 관점으로는, 그는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과 체계를 세우려 했던 사람일 수도 있다. 두 관점이 함께 존재할 때, 우리는 더 정직해진다. 우리도 누군가를 돕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인정받고 싶어하니까. 너는 선한 의도와 숨은 욕심이 섞여 있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점검하니?
그래서 니므롯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강함” 자체가 답이 아니라, 강함이 향하는 곳이 답이라는 질문으로. 사냥꾼의 활이 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으로만 당겨졌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목을 조이는 방향으로도 당겨졌는지 우리는 확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질문을 들고 오늘을 살 수 있다. 네가 가진 힘은 지금 누구를 살리고 있니?
- 창세기 10:6-12
- 창세기 10:8-10
- 창세기 10:11-12
- 창세기 11:1-9
- 역대상 1:10
- 미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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