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는 바울의 곁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복음을 지키고 교회를 세우도록 파송된 동역자다.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지고 공동체의 질서가 흔들릴 때, 그는 늘 그 사이에 서서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을 맡는다.
만약 네가 갈등으로 뜨거운 회의장이나, 서로 못 믿겠다는 눈빛이 오가는 교회 한가운데 서 있다면,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까?
성경은 디도의 출생지나 어린 시절을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조심스럽게 시작해야 한다. 다만 여러 기록을 따라가면, 디도는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인으로 알려진다. 그 말은 곧, 그는 태생부터 “경계 밖”에 서 있던 사람일 수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누군가에겐 낯선 존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리에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이야기를 들었을까? (참고: 갈 2:3)
어쩌면 디도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도시들 중 한 곳에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시장이 소란한 거리, 집집마다 다른 신들의 이름이 떠도는 동네, 사람들은 각자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며 살던 곳 말이다. 그때 디도 앞에 놓인 첫 선택은 이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익숙한 방식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낯선 은혜의 이야기를 믿어 볼 것인가.” 믿음의 문을 열면 관계가 바뀌고, 소문이 따라오고,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너라면 그 문 앞에서 무엇을 붙잡았을까? (참고: 딛 2:11-12)
디도가 바울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그의 두 번째 선택은 “따라나설 것인가”였다. 바울과 함께한다는 건 안전한 길이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된다. 도시를 옮겨 다니는 길은 늘 불확실했고,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발도 불러왔다. 디도는 “괜히 엮였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히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남았다. 그때 디도 안에서 관계의 무게가 생겼다. 스승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으로 바울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너는 누군가와 함께 걷기로 했을 때, 어떤 이유로 남아 본 적이 있니? (참고: 고후 8:23)
그리고 어느 날, 바울은 디도를 데리고 아주 민감한 자리로 올라간다. 예루살렘이다. 논쟁의 중심은 단순한 예절 문제가 아니었다. “이방인이 하나님 백성 안으로 들어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걸려 있었다. 그 자리에 디도가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였다. 디도에게는 세 번째 선택이 필요했다. “내 정체성이 다른 사람의 시험지가 될 때, 숨을 것인가, 아니면 담대히 설 것인가.” 그 자리는 긴장으로 숨이 막힐 수도 있다. 누군가는 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주장에 유리한 증거로 삼기 위해 바라본다. 그 눈빛 속에서 디도는 어떻게 버텼을까? (참고: 갈 2:1-5)
그 논쟁은 종종 “할례”라는 단어로 요약되지만, 속은 훨씬 깊다. 누군가는 기준을 세워야 안전하다고 느낀다. 또 누군가는 그 기준이 은혜를 가로막는 벽이 된다고 본다. 디도는 네 번째 선택 앞에 섰다. “갈등을 피하려고 겉모양만 맞출 것인가, 아니면 복음의 자유를 지키되 관계를 깨뜨리지 않을 길을 찾을 것인가.” 둘 다 어렵다. 자유를 말하다가 상처를 낼 수도 있고, 평화를 지키려다 진리를 흐릴 수도 있다. 너라면 어느 쪽이 더 두렵니? (참고: 갈 5:1)
시간이 흘러 디도의 이름이 다시 크게 드러나는 곳은 고린도다. 고린도 교회는 뜨겁고도 복잡한 공동체였다. 서로 자랑하고 편을 나누고, 오해가 자라나고, 바울을 향한 불신이 생겼다. 바울은 마음이 무거웠고, 직접 가면 더 큰 불씨가 될 수도 있었다. 그때 디도는 다섯 번째 선택을 한다. “불편한 소식을 들고, 불편한 사람들에게 가서, 불편한 대화를 시작할 것인가.” 누군가의 감정을 달래는 일은 칭찬보다 비난을 더 많이 받는다. 너라면 그 심부름을 맡겠니? (참고: 고후 7:6-7)
디도는 단지 전달자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바울의 진심을 풀어서 전하고, 교회의 반응을 다시 바울에게 가져오는 다리였다. 고린도에서 그는 여섯 번째 선택을 이어 간다. “말을 세게 해서 질서를 세울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들여 마음이 돌아오도록 기다릴 것인가.” 둘 중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균형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바로잡을 때, 너는 어떤 방식이 더 익숙하니? (참고: 딛 3:1-2)
바울은 디도를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이 있었다. 마음이 불안해서 잠도 편히 못 자는 날들이다. 디도가 돌아와 전해 준 소식은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일곱 번째 선택을 본다. 디도는 단지 “결과”만 전한 게 아니라, 어떻게 교회가 변화했는지, 누가 울었는지, 누가 회복을 원했는지, 그 과정을 품어 들고 온다.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도 쉽지 않다. “과장하지 않되, 희망을 잃지 않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는 누군가의 상처 난 관계를 중간에서 이어 본 적이 있니? (참고: 고후 7:13-16)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1:5, 개역개정)
그다음 디도의 삶은 더 조용하지만 더 무겁게 흘러간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둔다. “남겨 둔다”는 말 속에는 외로움과 책임이 함께 들어 있다. 여기서 디도의 여덟 번째 선택이 나온다.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섬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정리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교회를 세운다는 건, 감동적인 이야기만 모으는 일이 아니다. 미완의 문제를 정리하고, 공동체가 스스로 설 수 있게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너는 박수 없는 자리에서 꾸준히 일할 수 있겠니? (참고: 딛 1:5)
그레데는 ‘사람들이 거칠다’는 평판도 언급될 만큼, 말과 관계가 쉽게 어긋나는 환경이었을 수 있다. 그곳에서 디도는 아홉 번째 선택을 한다. “사람을 세울 때, 인기와 능력만 볼 것인가, 아니면 삶의 열매와 성품을 볼 것인가.” 장로를 세우는 일은 누군가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공동체 전체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잘못 세우면 교회가 더 흔들리고, 제대로 세우면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너라면 리더를 고를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보겠니? (참고: 딛 1:6-9)
하지만 리더를 세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짓된 가르침, 돈과 명예를 노리는 말들, 가정과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소문이 있다. 디도는 열 번째 선택을 해야 한다. “침묵해서 평화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위해 불편한 경고를 할 것인가.” 경고는 관계를 차갑게 만들 수 있고, 침묵은 공동체를 서서히 병들게 한다. 그 사이에서 디도는 어떤 두려움과 싸웠을까? (참고: 딛 1:10-11)
바울이 디도에게 준 편지는, 차가운 명령서가 아니라 현장용 지도에 가깝다. 그 안에는 “강하게 말하라”는 구절도 있고, “온유함을 보이라”는 권면도 있다. 디도는 열한 번째 선택을 계속 반복한다. “사람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걸려도 회복을 기대할 것인가.” 특히 나이 든 이들, 젊은 이들, 가정, 종의 자리까지 모두를 향한 권면을 전할 때, 그는 누구 편도 들지 않으면서 모두를 살려야 했다. 너는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세대를 동시에 품어 본 적이 있니? (참고: 딛 2:1-8)
디도의 사역에서 또 하나 중요한 장면은 ‘선한 일’에 대한 강조다. 당시 사람들은 말로는 신을 이야기하면서 삶은 전혀 다르게 살기도 했다. 디도에게는 열두 번째 선택이 있었다. “가르침을 말로만 남길 것인가, 아니면 삶의 습관으로 보이게 할 것인가.” 바울은 디도에게 ‘본이 되라’고 한다. 본이 된다는 건,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도 다시 바로 서는 모습을 포함한다. 너는 누군가에게 보여 주는 삶과, 혼자 있을 때의 삶이 얼마나 다르니? (참고: 딛 2:7, 딛 3:8)
또 바울은 디도에게 사회와의 관계도 가르친다. 권력에 맹목적으로 기대라는 말이 아니라, 불필요한 다툼에 빠지지 말고 선을 행하며 신뢰를 쌓으라는 방향이다. 여기서 디도는 열세 번째 선택을 한다. “세상과 싸움으로만 자신을 증명할 것인가, 아니면 선한 행동으로 신앙의 진짜 얼굴을 보여 줄 것인가.” 때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관계 속에서 신뢰를 얻는 일이 더 어렵다. 너라면 오늘 어떤 방식으로 믿음을 드러내고 싶니? (참고: 딛 3:1-2)
그리고 디도서에는 분열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조언도 있다. 이건 냉혹한 배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에 가깝다. 디도의 열네 번째 선택은 이렇다. “끝까지 설득할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상처를 막기 위해 거리를 둘 것인가.” 사랑은 무조건 허용이 아니다. 그러나 질서는 무조건 단절도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경계’가 필요하고, 그 경계는 눈물과 함께 세워질 때가 많다. 너는 누군가를 위해 선을 긋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렵다고 느끼니? (참고: 딛 3:10-11)
바울은 디도에게 “니고볼리로 오라”는 계획도 전한다. 겨울을 그곳에서 보내려 한다고 한다. 디도는 열다섯 번째 선택을 하게 된다. “내가 맡은 현장을 정리하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더 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떠남은 도망이 될 수도 있고, 파송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방향과 타이밍이다. 너는 어떤 때에 머물고, 어떤 때에 떠나는 편이니? (참고: 딛 3:12)
디도의 마지막 기록은 더욱 짧게 스친다. 바울이 마지막에 가까운 편지에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는 말이 나온다. 이 한 문장은, 디도가 여전히 파송을 따라 움직였음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겪었는지는 남겨 두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성경은 여기까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짧은 문장 안에도 열여섯 번째 선택이 숨는다. “위험한 길이라도 필요한 곳으로 갈 것인가.” 너라면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무엇을 읽겠니? (참고: 딤후 4:10)
전해지는 배경을 조심스럽게 상상해보면, 디도는 많은 밤을 혼자 보냈을 것이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누구도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 밤 말이다. 누가 장로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가르침을 막아야 하는지, 누구를 다시 품어야 하는지. 그때 디도의 마음에는 두 가지 소리가 함께 났을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자”와 “그래도 사람을 살리자.” 그 사이에서 그는 결국 ‘사람이 아니라 은혜’에 기대었을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을 붙잡기 힘든 날, 무엇에 기대니? (참고: 딛 2:11-14)
디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여운은 화려함이 아니라 신뢰다. 바울이 가장 민감한 자리로 그를 보내고, 가장 복잡한 현장에 그를 남겨 두었다는 건, 디도가 말보다 삶으로 검증된 사람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공동체 안에서 자유와 질서 사이를 걸었다. 그는 누군가를 세우되, 사람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으려 했다. 너는 네가 속한 자리에서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 사이를 걸어 본 적이 있니? (참고: 갈 2:5, 딛 1:5)
마지막으로, 디도의 퇴장은 조용하다. 성경은 그의 죽음이나 노년을 길게 기록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디도다운 마무리일지도 모른다. 주목을 끄는 대신, 맡은 일을 끝까지 하고 다음 사람에게 길을 내어 주는 것. 한 관점으로는, 디도는 “갈등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교회가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오늘 너에게도 그런 역할이 필요할까? (참고: 고후 8:23)
- 갈라디아서 2:1-5
- 고린도후서 2:13
- 고린도후서 7:6-16
- 고린도후서 8:16-24
- 디도서 1:5-16
- 디도서 2:1-15
- 디도서 3:1-14
- 디모데후서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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