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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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세리로 살던 마태가 예수의 부름 앞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이야기를, 장면과 감정으로 따라가며 읽습니다. 돈과 평판, 소속감 사이에서 흔들리던 한 사람이 어떻게 복음의 증인이 되었는지 조심스럽게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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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는 세리의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옮겨간 사람으로, 돈과 평판의 세계에서 은혜와 사명의 세계로 넘어가는 변화를 가장 가까이 보여주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만약 네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자리 한가운데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와 "나를 따르라"라고 말한다면, 너는 그 말을 믿고 일어설 수 있을까?


마태의 시작을 성경은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세리였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단어에 묻어 있는 공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세리는 로마의 세금을 거두는 일을 맡았고, 동족에게는 "남의 편"처럼 보이기 쉬웠지요. 돈은 들어오지만, 사람들의 눈빛은 차가워집니다. 그 자리에서 마태가 매일 맞닥뜨린 첫 번째 갈등은 이것입니다. 안정된 수입과 사회적 고립 중 무엇이 더 견디기 어렵냐는 것 말이에요. 너라면 어느 쪽을 택했을까? (참고: 마태복음 9:9)

어쩌면 마태는 어릴 때부터 숫자에 밝았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그 재능을 칭찬했겠지요. 그런데 성장하면서 세상이 그 재능을 어디에 쓰라고 밀어붙였는지, 마태는 선택해야 했을 겁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길인가, 공동체의 환영을 받는 길인가. 성경은 그 장면을 말하지 않지만, 전해지는 배경을 조심스럽게 상상해보면, 그의 마음에는 늘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너는 지금 어떤 기준으로 네 자리를 결정하고 있니? (참고: 마태복음 10:3)

마태가 앉아 있던 곳은 "세관" 혹은 "세리의 자리"로 표현됩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내고, 통행세를 계산하고, 서류에 도장을 찍는 곳. 여기서 두 번째 갈등이 생깁니다. "정직하게 할 것인가, 조금 더 챙길 것인가" 하는 유혹이지요. 세리라는 직업 자체가 늘 의심을 받았던 이유는, 그 경계가 쉽게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마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성경은 단정하지 않지만, 그가 매일 그 경계 앞에 섰다는 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너는 네가 가진 권한을 어디까지로 제한하고 있니? (참고: 누가복음 5:27)

그런 마태의 일상에 예수가 들어옵니다. 예수는 소문으로만 들리던 분이었을 겁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죄인들과도 어울린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그 소문을 두고 또 갈라졌겠지요. "거룩한 분"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위험한 사람"이라고 경계하는 사람도 있었을 테니까요. 마태의 세 번째 갈등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나는 그분을 멀리서 구경만 할 것인가, 아니면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 하는 갈등입니다. 너는 믿음의 문턱에서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본 적이 있니? (참고: 마가복음 2:14)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옵니다. 예수는 마태의 자리로 다가와 말합니다. 단순한 명령처럼,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을 살리는 초대처럼 들리는 말입니다. 마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 장면은 짧지만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네 번째 갈등이 거기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쌓아온 것"과 "지금부터 따를 것"이 부딪치거든요. 마태는 장부를 덮고, 익숙한 도장을 내려놓고, 사람들의 시선을 등에 지고 일어섭니다. 너라면 그 자리에서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겠니? (참고: 마태복음 9:9)

그가 일어섰을 때 기쁨만 있었을까요? 한 관점으로는, 두려움도 함께였을 겁니다. 세리를 그만두면 생계는 어떻게 될까, 옛 동료들은 뭐라고 할까, 마을 사람들은 더 조롱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는 따라갑니다. 여기서 다섯 번째 갈등이 또 생깁니다. "내가 새 길을 가는데, 과거가 나를 붙잡아 끌지는 않을까" 하는 갈등이요. 너는 네 과거가 너를 정의한다고 느낀 적이 있니? (참고: 누가복음 5:28)

마태는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풉니다. 그 자리에 세리와 죄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마태의 마음에는 이런 감정이 섞였을 수 있습니다. "내가 새 길을 가지만, 내 옛 친구들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 선택은 여섯 번째 갈등을 낳습니다. 새 공동체에 들어가는 길과, 옛 사람들을 품는 길은 종종 충돌하거든요. 그런데 마태는 식탁을 열어 두지요. 너는 누군가의 변화 앞에서 문을 닫는 편이니, 열어 두는 편이니? (참고: 마태복음 9:10, 누가복음 5:29)

바로 그때 바리새인들이 묻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느냐." 질문 자체가 칼날 같지요. 마태는 그 말이 자기에게 꽂히는 걸 느꼈을 겁니다. 일곱 번째 갈등입니다. "나는 여전히 낙인 찍힌 사람인가, 아니면 새로 받아들여진 사람인가." 예수는 그 자리에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뜻을 밝힙니다. 마태는 그 말로 숨을 쉬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누군가가 너를 규정하는 말과, 너를 살리는 말 중 무엇을 더 크게 듣고 있니? (참고: 마태복음 9:11-13)

이제 마태는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열정적이었던 야고보와 요한, 회의적 질문을 잘 던졌을지도 모르는 도마, 그리고 나중에 어둠의 선택을 하게 되는 가룟 유다까지. 마태는 그들 사이에서 여덟 번째 갈등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들 가운데 어울릴 수 있을까." 어부들의 손은 거칠고, 세리의 손은 잉크 냄새가 났을지도 모르지요. 관계의 공기가 낯설 때, 너는 어떻게 자리를 잡니? (참고: 마태복음 10:2-4)

예수는 제자들을 보내며 권위를 주고, 동시에 위험도 알려줍니다. 복음을 전하되,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요. 마태에게 아홉 번째 갈등이 찾아옵니다. "나는 안전을 선택할 것인가, 사명을 선택할 것인가." 세리로 살 때는 권력의 그늘이 있었을지 몰라도, 제자로 살면 그늘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너는 편안함을 잃을 때에도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본 적이 있니? (참고: 마태복음 10:16-20)

여기서 마태의 감정은 또 흔들렸을 겁니다. 예수의 말씀은 때때로 날카롭고, 세상을 거꾸로 뒤집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작은 자 하나를 귀히 여기라는 말. 마태는 장부로 사람을 숫자로 셌던 과거를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열 번째 갈등은 "나는 사람을 무엇으로 보았나" 하는 질문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성과, 점수, 평판으로 서로를 재단하잖아요. 너는 누군가를 숫자 대신 이야기로 바라본 적이 있니? (참고: 마태복음 5:43-48)

예수의 길이 예루살렘으로 향할수록 공기는 무거워집니다. 제자들은 "이제 정말 왕이 되시는 건가" 기대했을 수도 있고, "이 길은 위험하다" 두려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태의 열한 번째 갈등은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생깁니다. 예수는 권력의 자리보다 십자가의 길을 말하니까요. 네가 기대하던 방식으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너는 믿음을 어떻게 붙잡니? (참고: 마태복음 20:20-28)

마지막 밤, 제자들은 함께 식탁에 앉습니다. 예수는 빵과 잔을 나누며 자신을 내어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때 마태는 열두 번째 갈등을 맞습니다. "나는 이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 사랑이 너무 크면 오히려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지요. 너는 누군가가 너를 위해 희생하려 할 때, 그 마음을 편하게 받을 수 있니? (참고: 마태복음 26:26-29)

그리고 겟세마네. 제자들의 눈꺼풀은 무겁고, 공포는 가까이 옵니다. 예수가 잡히는 순간, 제자들은 흩어집니다. 마태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열세 번째 갈등이 그를 덮쳤을 겁니다. "나는 끝까지 곁에 있을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성경은 마태가 그 밤에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정하지 않고, 다만 제자들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너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 어디로 뛰어가니? (참고: 마태복음 26:56)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의 마음을 무너뜨렸을 겁니다. 마태에게 열네 번째 갈등이 생깁니다. "내가 따르던 분이 죽었는데, 나는 이제 무엇을 믿어야 하지." 과거로 돌아갈까, 아니면 기다릴까. 그때 부활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요. 그러나 제자들은 다시 모입니다. 너는 절망이 깊을 때, 다시 시작하라는 소식을 들으면 믿을 수 있니? (참고: 마태복음 28:8-10)

이 지점에서 마태의 인생은 다시 뒤집힙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권세를 말하고, 세상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보냅니다. 마태의 열다섯 번째 갈등입니다. "나는 내 과거 때문에 뒤로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사명 앞에 설 것인가." 세리는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서기 어려운 직업이었지만, 이제 그는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너는 너의 과거가 사명을 막는다고 느낀 적이 있니? (참고: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8-20, 개역개정)

이 말씀은 마태에게 특히 크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늘 권세의 그림자 아래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권세, 돈의 권세, 사람들의 시선의 권세. 그런데 예수는 다른 권세를 말합니다. 사랑으로 사람을 살리는 권세요. 마태는 열여섯 번째 갈등을 지나야 합니다. "내가 알던 힘의 방식과, 예수가 주는 힘의 방식 중 무엇을 따를 것인가." 너는 힘을 어디서 끌어오고 있니? (참고: 마태복음 28:18)

그 다음부터의 마태는 성경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가 복음을 전하며 여러 지역을 다녔다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 관점으로는, 마태가 "예수의 이야기를 정리해 남기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고 전통은 말합니다. 세리로서 문서를 다뤘던 경험이, 여기서는 선한 방향으로 쓰였을 수도 있지요. 열일곱 번째 갈등입니다. "내 기술과 과거가, 이제는 어떤 선한 목적에 쓰일 수 있을까." 너는 네가 가진 기술을 누구를 위해 쓰고 있니? (참고: 마태복음 1:1, 전통적 연관)

마태가 공동체 안에서 겪었을 갈등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옛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누군가는 여전히 그를 경계했을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은 원래 세리였잖아." 마태의 열여덟 번째 갈등은 관계 속에서 찾아옵니다. "나는 매번 증명해야만 하나, 아니면 은혜를 믿고 기다려야 하나." 그 갈등 속에서 마태가 배운 것은, 복음이 사람을 단번에 완벽하게 만들지 않지만, 천천히 방향을 바꾸게 한다는 사실일 수 있습니다. 너는 누군가의 변화가 느리다고 포기한 적이 있니? (참고: 마태복음 18:21-22)

또 하나, 마태는 돈의 문제 앞에서 누구보다 민감했을 겁니다. 제자 공동체는 가난했고, 나눔과 신뢰로 버텨야 했지요. 거기에는 늘 유혹도 있었을 겁니다. 특히 가룟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았다는 기록을 떠올리면, 공동체가 돈 문제로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 짐작됩니다. 마태의 열아홉 번째 갈등은 "돈을 도구로 둘 것인가, 주인으로 둘 것인가"입니다. 너는 돈이 너의 결정을 좌우한다고 느낀 적이 있니? (참고: 요한복음 12:6, 관계 맥락)

마태가 복음을 전했다면,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과거를 숨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숨기지 않을 때 오히려 복음이 또렷해지니까요. "나는 세리였고, 그래서 멸시를 받았지만, 예수가 나를 불렀다." 이 고백에는 스무 번째 갈등이 담깁니다. "부끄러움을 숨길 것인가, 아니면 은혜의 증거로 바꿀 것인가." 너는 너의 약점을 말할 때 더 자유로워지니, 더 두려워지니? (참고: 마태복음 9:9-13)

마태의 마지막 기록은 성경 안에서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였는지 성경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순교에 대한 전승도 있고, 조용히 생을 마쳤다는 전승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빈칸을 확정적으로 채우지 않습니다. 다만 마태의 삶이 남긴 흔적은 분명합니다. 낙인 찍힌 자리에서 시작해 초대받은 자리로 옮겨간 한 사람의 이야기 말이지요.

그리고 그 여운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너는 지금 어떤 자리에서 살고 있니. 사람들의 시선이 너를 가두고 있니, 아니면 부름이 너를 열어 주고 있니. 마태의 이야기는 "너도 가능하다"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만약 부름이 온다면, 너는 어떻게 답할까"라고 조용히 질문합니다. 그 질문을 품고, 오늘의 길을 한 걸음만 다시 걸어볼 수 있을까요? (참고: 마태복음 28:18-20)

  • 마태복음 9:9-13
  • 마태복음 10:2-4
  • 마태복음 10:16-20
  • 마태복음 26:26-29
  • 마태복음 26:56
  • 마태복음 28:8-10
  • 마태복음 28:18-20
  • 마가복음 2:14-17
  • 누가복음 5:27-32
  • 사도행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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