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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디아

제비뽑기 한 번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도 맛디아. 조용한 제자의 선택이 공동체의 상처와 공백을 어떻게 메웠는지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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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디아는 말이 많은 영웅이 아니라, 빈자리를 메우는 조용한 선택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한 관점으로는 그의 이야기는 “사도단이 다시 완성되는 순간”을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하고, 또 다른 관점으로는 상처 난 공동체가 기도와 책임으로 다시 걸음을 떼는 과정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참고: 사도행전 1:15-26)

만약 네가 그 방 안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의 배신이 남긴 공백 앞에서, 네 이름이 후보로 불리며 모두의 시선이 너를 향한다면, 너는 그 자리를 기쁨으로 받을 수 있을까, 두려움에 뒤로 숨고 싶을까? (참고: 사도행전 1:21-26)


맛디아를 처음부터 따라가려 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조금은 불친절하다. 그는 복음서에서 크게 이름이 부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성경은 그의 출생지나 가정사, 어린 시절을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께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시던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닌 사람”이라는 조건 속에서, 그의 삶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 사도행전 1:21-22)

조심스럽게 상상해보면, 맛디아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예수의 발자국을 오래 따라왔을 가능성이 크다. 군중이 환호하던 날도, 사람들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가던 날도, 그는 뒤에서 또는 곁에서 그 길을 함께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함께”라는 단어가 훗날 그의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자격이 된다. (참고: 누가복음 24:13-35, 사도행전 1:21-22)

첫 번째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를 따라간다는 건 단지 좋은 이야기를 듣는 일이 아니었다. 일상을 내려놓는 일이었고, 주변의 시선을 견디는 일이었다. 혹시 가족은 물었을지 모른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그때 맛디아는 설명으로 설득하기보다, 마음 한쪽에 생긴 확신을 품고 한 걸음 더 내딛었을 것이다. 그 선택은 작아 보이지만, 훗날 “항상 함께 있었다”는 말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너라면 그 작은 선택을 오늘도 이어갈 수 있을까? (참고: 누가복음 9:57-62, 사도행전 1:21-22)

두 번째 선택도 있다. 예수 곁에는 가까이 붙는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다. 뒤에서 조용히 돕는 사람들, 듣고 배우며 묵묵히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빛나는 자리로 나서기보다, 뒤에서 길을 지키는 자리. 맛디아는 아마 그 자리와 더 가까웠을 수 있다. 주목받는 기쁨 대신, 소외될 수 있는 침묵을 택하는 일. 그건 자존심을 다루는 선택이다.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 앞에서의 걸음을 이어갈 수 있을까? (참고: 마태복음 6:1-4)

예루살렘, 갈릴리, 길 위의 시간들이 쌓였을 것이다. 예수의 말씀은 위로이면서도 날카로웠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저항을 깨뜨리는 명령이다. 맛디아 역시 그 말씀 앞에서 여러 번 걸려 넘어졌을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붙잡고 싶은 순간마다, 내려놓으라는 부르심이 따라왔다. 그는 그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선택했을까, 아니면 말씀을 선택했을까? (참고: 마태복음 5:44)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가 있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앞에 서서 말하고 움직였고, 어떤 이들은 뒤에서 지켰다. 맛디아는 아마 말보다 눈으로 더 많이 기록하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관계는 늘 쉽지 않다. 누군가는 급했고, 누군가는 조심스러웠다. 방향이 맞지 않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갈등을 끊어내는 대신, 함께 머무는 길을 택하는 일. 그 선택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훈련”이 된다. 너는 갈등 앞에서 떠나는 편인가, 남는 편인가? (참고: 요한복음 13:34-35)

예수의 사역이 깊어질수록 위험도 커졌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길, 긴장감은 공기처럼 퍼졌을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질문을 품었을지 모른다. “정말 여기까지 가야 하나?” 그때 맛디아는 뒤로 물러나 안전을 택할 수도 있었고, 끝까지 함께 가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성경은 그 장면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지만, 사도행전의 조건은 그가 “끝까지 곁에 있었다”는 방향을 가리킨다. 두려움이 앞설 때 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참고: 사도행전 1:21-22)

마지막 주간, 도시의 소음과 종교 지도자들의 날 선 시선, 제자들의 불안이 뒤엉켰다. 그때 공동체 안에서도 갈등이 있었다. 누가 더 큰가를 두고 다투는 마음, 서로 비교하는 시선. 맛디아도 그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 그는 그 마음을 키웠을까, 아니면 내려놓았을까? 공동체를 세우는 선택은 늘 자기 마음을 내려놓는 선택과 붙어 있다. 너라면 어느 쪽을 붙잡을까? (참고: 누가복음 22:24-27)

그리고 그 밤이 왔다. 체포, 도망, 흔들림. 십자가는 단지 예수의 고통이 아니라, 그를 따르던 이들의 믿음이 찢기는 사건이기도 했다. 맛디아는 어디에 있었을까?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흩어짐”과 “숨음”이 제자들에게 실제였음을 안다. 그때 그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과, 두려움 속에서도 마음을 끊지 않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너는 두려움이 찾아올 때, 관계를 끊는가, 아니면 멀리서라도 붙드는가? (참고: 마태복음 26:56)

십자가 이후, 무덤의 침묵과 소문과 눈물이 공동체를 뒤덮었다. 누군가는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래도 하나님은 하시겠지”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맛디아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믿음은 감정이 무너질 때 더욱 진짜가 된다. 그때 그는 절망을 선택했을까, 아니면 눈물 속에서도 기도를 선택했을까? (참고: 누가복음 24:1-12)

부활의 소식이 들려오면서, 공동체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활이 곧바로 모든 상처를 지우지는 않는다. 배신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유다의 이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수치심을 느꼈고, 누군가는 “우리도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맛디아에게도 그 감정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공동체가 다시 서려면, 그 상처를 “없는 척”하지 않고, 책임 있게 다뤄야 한다. 너라면 상처를 덮겠는가, 다루겠는가? (참고: 사도행전 1:15-20)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한다. 이 장면은 조용하지만, 사실은 폭풍의 전조 같다. 왜냐하면 기도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흩어진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 방 안에는 사도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여러 제자들, 여인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의 형제들도 있었다. 관계의 폭이 넓어질수록 의견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함께 기도하는 선택. 맛디아는 그 선택 안에서 공동체의 호흡을 배웠을 것이다. 너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1:12-14)

그리고 베드로가 일어나 말한다. 지도자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공동체 앞에서 정리해야 할 문제를 꺼내는 장면이다. 유다가 남긴 빈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갈등이 생긴다. “우리가 사람을 뽑아도 되는가?”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가?” “지금 이런 걸 논의할 때인가?” 서로의 마음속에 다른 속도가 있을 수 있다. 맛디아는 이 논의 속에서 자신을 숨길 수도 있었고, 필요하다면 책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도 있었다. 너라면 공동체의 필요가 너를 부를 때, 조용히 뒤로 숨겠는가? (참고: 사도행전 1:15-22)

조건이 제시된다. 예수의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증인. 여기서 맛디아의 인생이 뜻밖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사람들은 그가 어떤 설교를 했는지보다, 그가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지를 본다. 신실함은 때로 재능보다 먼저 공동체를 살린다. 그런데 이 조건은 동시에 부담이다. “내가 정말 그 자격이 있나?”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올라온다. 맛디아는 스스로를 과장하지도, 깎아내리지도 않는 선택을 해야 했다. 너는 네 삶의 조용한 날들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필요가 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1:21-22)

두 사람이 후보가 된다. 요셉이라 하는 바사바(별명 유스도)와 맛디아. 여기서부터 맛디아의 심장은 더 빨리 뛰었을 것이다. 한 관점으로는 “영광의 기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또 다른 관점으로는 “십자가의 길에 다시 서는 일”이다. 사도란 이름은 편한 직함이 아니다. 고난의 가까운 자리다. 높아지는 자리가 아니라 더 가까이 드러나는 자리다. 그럼에도 맛디아는 그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너라면 책임의 무게를 알면서도 손을 들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1:23)

그리고 그들은 기도한다. 짧은 인용으로만 그 떨림을 느껴보자.

“주여,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께서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택하신 자인지 보이소서.” (사도행전 1:24, 개역개정)

여기에는 중요한 선택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으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 누가 더 말 잘하는지,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는지, 누가 더 인기 있는지로. 하지만 그들은 “마음을 아시는 주”께 묻는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공동체를 세우려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후보인 맛디아에게도 요구된다.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대는 선택. 너는 평가의 바람이 불 때, 어디에 발을 디딜까? (참고: 사도행전 1:24)

제비를 뽑는다. 오늘 우리가 보면 낯설고 불안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맡기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맛디아의 갈등은 더 깊어진다. 만약 뽑히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뽑히면, 감당할 수 있을까?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오는 자리에서 그는 무엇을 붙잡았을까? 공동체의 평안을 위해 자신의 감정까지 정리하는 선택이 필요했을 것이다. 너라면 결과가 나오기 전의 그 침묵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참고: 사도행전 1:26)

제비가 맛디아에게 떨어진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누군가는 안도의 숨을 쉬고, 누군가는 놀라고,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맛디아는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기쁨을 과시하지 않는 선택, 동시에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는 선택. 겸손과 담대함을 함께 들고 서는 선택이다. 너라면 그 자리에 서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1:26)

그 뒤부터 성경은 맛디아를 길게 따라가지 않는다. 이것이 또 하나의 갈등이다. “왜 내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을까?”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이 침묵이 맛디아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이름을 남기기 위해 일한 사람이 아니라, 증인으로 서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맡은 일을 하는 사람의 숨결이 여기 있다. 너는 기록되지 않아도 괜찮은가? (참고: 사도행전 1:26)

오순절이 온다.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가 설교하고,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묻는다. 그 큰 역사 속에 맛디아도 분명히 있었다. 그는 새로 뽑힌 “신입”으로 뒤에 서 있었을까? 아니면 이전부터 함께한 증인으로서, 이 장면이 얼마나 오래 준비되어 왔는지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공동체의 새 출발은 누군가의 오래된 신실함 위에 놓인다. 너는 지금 어떤 신실함 위에 서 있는가? (참고: 사도행전 2:1-41)

사도들의 삶은 곧 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성전에서의 가르침, 체포, 위협. 이름이 알려질수록 표적이 된다. 맛디아는 이 길을 선택한 순간, 안전을 포기한 셈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선택이 있다. 위협 속에서도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그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방향에 서야 했을 것이다. 너는 불이익이 두려울 때, 어떤 진실을 지키겠는가? (참고: 사도행전 4:18-20)

공동체 내부의 갈등도 있다. 재산을 나누는 문제, 진실과 거짓의 문제, 사람의 욕심이 스며드는 순간. 사도들은 단지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마음을 돌보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맛디아는 여기서 “사도란 무엇인가”를 다시 배웠을 것이다. 기적의 순간보다,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는 시간이 더 길다. 너라면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일과, 공동체의 건강을 지키는 일 중 무엇을 먼저 붙들겠는가? (참고: 사도행전 5:1-11)

전해지는 전승들 가운데는 맛디아가 이후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직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성경은 그 이후의 구체적 여정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니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기보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정도로만 조심스럽게 상상할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사도의 길은 한 도시에서 박수 받는 길이 아니라, 많은 날들을 조용히 견디는 길이라는 점이다. 부르심은 단발성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방향이다. 너는 오래 버티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가? (참고: 사도행전 1:26)

맛디아의 관계를 다시 떠올려보자. 베드로는 공동체 앞에서 상처를 정리하고 길을 제시했다. 요셉 바사바는 후보가 되었지만 뽑히지 않았다. 이 관계는 미묘했을 수 있다. 뽑힌 사람은 미안함을, 뽑히지 않은 사람은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둘 다 선택해야 한다. 경쟁을 끝내는 선택, 서로를 존중하는 선택. 맛디아는 이 관계에서 무엇을 택했을까? 너는 비교가 생길 때 관계를 어떻게 지키는가? (참고: 사도행전 1:23-26)

그리고 유다의 그림자. 그는 배신의 상징처럼 남지만, 동시에 공동체에게 경고가 된다. “누구든 넘어질 수 있다.” 맛디아는 유다의 빈자리를 메우며 그 경고를 매일 들고 살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사도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실패 위에서 우쭐해지는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더 경계하는 일이 된다. 남의 سقوط이 내 교만이 되지 않게 하는 선택이다. 너라면 실패한 사람을 보며 무엇을 배우겠는가? (참고: 사도행전 1:16-20)

맛디아의 마지막 기록은 성경 안에서 사실상 “선택받아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 수에 더해졌다”는 문장에 가까운 자리에서 멈춘다. 죽음의 방식이나 마지막 설교, 남긴 편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성경은 여기까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어쩌면 이것이 메시지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가 길게 적히지 않아도, 공동체의 한 페이지를 넘어지지 않게 붙잡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 이름보다 역할, 박수보다 충성이 남는 삶 말이다. 너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참고: 사도행전 1:26)

마지막으로, 맛디아가 남긴 여운을 한 관점으로만 조심스럽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하나님은 때로 가장 눈에 띄는 사람보다, 가장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람을 통해 공동체를 세우신다. 그리고 그 오래됨은 화려함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오늘 네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하는 작은 선택 하나가, 언젠가 누군가의 공백을 메우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 너는 “나 같은 사람이요?”라고 물을까, 아니면 조용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할까? (참고: 사도행전 1:21-26)

  • 사도행전 1:12-14
  • 사도행전 1:15-20
  • 사도행전 1:21-26
  • 사도행전 2:1-4
  • 사도행전 2:32-33
  • 사도행전 4:18-20
  • 사도행전 5:1-11
  • 요한복음 13:34-35
  • 누가복음 22:24-27
  • 마태복음 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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