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은 초대 교회가 커지면서 생긴 첫 큰 균열을 “섬김”으로 꿰매고, 결국 “증언”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는 믿음이 단지 마음속 감정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로 드러난다는 걸 보여준다.
만약 네가 모두에게 필요한 일을 하다가, 오히려 사람들의 오해와 공격을 한몸에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니?
성경은 스데반의 어린 시절이나 고향을 길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상상해볼 뿐이다. 그는 아마도 헬라 말과 유대 전통 사이를 오가며 살던 사람일 수 있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편하지 않은 자리에서, 늘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먼저 읽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교회 안의 불편한 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오래전부터 마음에 쌓여 있던 질문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라면, 약한 사람의 눈물이 먼저 닦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 말이다. (참고: 사도행전 6:1)
초대 교회가 갑자기 커지자, 밥을 나누는 일에서 문제가 생겼다. 헬라파 과부들이 “우리가 빠지는 것 같다” 하고 서운함을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첫 번째 선택이 나타난다. 사도들은 모든 일을 자신들이 다 붙들고 갈지, 아니면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고 섬김의 구조를 세울지 결정해야 했다. 누군가는 “우리가 해야 안전하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공동체가 건강하려면 역할을 나눠야 한다고 판단했다. 너라면 권한을 내려놓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6:2-4)
두 번째 선택은 공동체에게 있었다. “누가 이 일을 맡을까”를 정하는 건,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여기엔 늘 시기와 의심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을 세우기로 한다. 스데반이 그 명단에 들어간다. 그는 화려한 설교자로 먼저 등장한 게 아니라, 밥과 삶의 무게를 나누는 자리에서 먼저 부름을 받는다. 너라면 눈에 덜 띄는 자리로 부름 받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6:5-6)
스데반이 맡은 일은 단순히 그릇을 옮기는 일이 아니었을 거다. “누가 더 힘든지”가 보이고, “누가 더 억울한지”가 들리는 자리다. 어떤 과부는 기다리다 지쳐 말도 못 하고 돌아섰을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저쪽은 헬라파라서” 같은 말로 은근히 벽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세 번째 선택이 생긴다. 스데반은 편을 가르며 갈등을 키울 수도 있었고, 아니면 조용히 넘어가며 불만을 묻어둘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사람들 가운데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고 말한다. 섬김이 단지 행정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능력으로 이어진 셈이다. 너라면 매일의 반복 속에서 마음이 메말라 갈 때, 무엇으로 다시 따뜻해질까? (참고: 사도행전 6:8)
그러자 반대편에서 움직임이 시작된다. 어떤 사람들은 스데반과 논쟁하려 했다. 여기서 네 번째 선택이 그들에게 있다. 그들은 진짜로 배우고 확인하려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는데, 대신 “이 사람을 꺾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어 버린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이 스데반의 지혜와 성령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말로 이기지 못하면, 사람은 종종 다른 방법을 찾는다. 너도 누군가의 말이 너무 바르게 들릴 때, 이상하게 화가 난 적 있니? (참고: 사도행전 6:9-10)
다섯 번째 선택은 스데반에게 있다. 논쟁이 거칠어질수록, 사람은 보통 자신을 지키려 움츠러든다. “내가 괜히 나섰나” 후회하며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스데반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상대를 조롱하거나 비웃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삶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너라면 누군가가 너를 오해할 때, 상대를 꺾는 게 아니라 진실을 지키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6:10)
말로 안 되자, 그들은 거짓 증인을 세운다. “이 사람이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는 누명이다. 여기서 여섯 번째 선택이 드러난다. 공동체는 불편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말을 이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진실을 위해 불편함을 견딜 수도 있다. 그들은 전자를 택했다. 그리고 스데반은 끌려가 공회 앞에 선다. 그 자리에서 그는 단순히 ‘나 억울해요’만 말해도 되었을 텐데, 다른 길을 선택한다. 너라면 생존이 달린 자리에서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6:11-13)
그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고 한다. 이것은 화려한 표현이지만, 한 관점으로는 이런 모습일 수도 있다. 두려움에 휩싸여 눈이 흔들리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드러나는 얼굴. 일곱 번째 선택이 여기서 이어진다. 그는 공포에 끌려가 즉흥적으로 변명하기보다, 하나님 이야기를 길게 꺼내기 시작한다. 듣는 사람들은 “왜 지금 이런 말을 하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데반은 자기 변호를 넘어,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너라면 상대의 질문을 넘어, 더 깊은 질문을 꺼낼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6:15, 7:1)
그의 말은 먼 옛날로 시작한다. 아브라함, 약속, 낯선 땅, 떠남. 여기서 스데반이 던지는 갈등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길 위에서 사람을 부르시는 분”이라는 관점이다. 여덟 번째 선택은 듣는 이들의 마음에서 일어난다. 그들은 자기들의 안전한 틀을 지킬지, 하나님이 더 넓게 일하신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일지 선택해야 했다. 너는 하나님이 네가 익숙한 자리 밖에서도 일하신다고 믿을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7:2-8)
스데반은 요셉 이야기도 꺼낸다. 형제들이 시기해서 버렸지만, 하나님이 그를 통해 많은 생명을 살리셨던 이야기. 여기서 아홉 번째 선택이 보인다. 사람은 늘 “내가 중심”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누군가 빛나는 순간, 시기가 먼저 올라온다. 스데반은 그 오래된 패턴을 슬쩍 비춘다. “너희 조상들도 그랬다”는 말 속에는, “너희도 지금 그러고 있지 않니”라는 질문이 숨어 있다. 너는 누군가의 선한 영향력이 커질 때, 기뻐할 수 있니? (참고: 사도행전 7:9-16)
그리고 그는 모세 이야기로 간다. 모세는 자기 힘으로 정의를 세우려다 오히려 거절당했고, 광야로 도망쳤다. 여기서 열 번째 선택이 나타난다. 모세는 실패 앞에서 멈출 수도 있었지만, 광야에서 다시 부름을 받는다. 스데반이 이 이야기를 길게 꺼내는 이유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시 부름 앞에 서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너는 실패한 자리에 다시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니? (참고: 사도행전 7:17-34)
모세가 백성을 이끌 때도 갈등은 계속됐다. 사람들은 “우리를 이끌 지도자를 달라” 하며 눈에 보이는 우상을 찾았다. 여기서 열한 번째 선택은 ‘기다림’이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건 느리고 답답하다. 그래서 사람은 손에 잡히는 것을 붙든다. 스데반은 그 역사를 말하며, 지금 공회 앞에 선 사람들의 마음도 비슷하다고 본다. 너는 불안할 때, 눈에 보이는 안전을 붙잡느라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진 않니? (참고: 사도행전 7:39-41)
스데반은 성막과 성전 이야기로 넘어간다. 성전은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하나님을 그 안에 가두면 문제가 된다. 여기서 열두 번째 선택이 등장한다. 우리는 ‘거룩한 것’을 사랑한다면서, 사실은 그 거룩함을 내 소유처럼 만들고 싶어할 때가 있다. 스데반은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흐름으로, 공간보다 마음을 묻는다. 너는 신앙을 건물이나 형식으로만 붙들고 있진 않니? (참고: 사도행전 7:44-50)
이제 그의 말은 더 날카로워진다. 그는 그들이 성령을 거스르고, 의인을 배반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열세 번째 선택이 일어난다. 스데반은 부드럽게 돌려 말해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순간, 진실을 숨기면 공동체가 더 깊이 병든다고 본 것 같다. 물론 이 말이 듣는 이들에게는 모욕처럼 들렸을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방식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너라면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해야 할 말을 삼켜본 적 있니? (참고: 사도행전 7:51-53)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마음에 찔리기보다, 이를 갈며 분노한다. 여기서 열네 번째 선택은 청중에게 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를 받아들이는 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회개’ 대신 ‘분노’를 선택한다. 그 분노는 곧 행동이 된다. 너는 누군가의 말이 아플 때, 그 사람을 없애고 싶어진 적이 있니? (참고: 사도행전 7:54)
그 순간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본다. 여기서 열다섯 번째 선택이 스데반에게 있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공포에 잠길 수도 있었지만,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린다. 그리고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들에게 마지막 불씨가 된다. 하지만 스데반에게는 마지막 붙잡을 손잡이였을지 모른다. 너는 벽처럼 막힌 순간에 어디를 바라보니? (참고: 사도행전 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도행전 7:55-56, 개역개정)
사람들은 그의 말을 더 듣지 않으려 한다. 귀를 막고 소리 지르며 달려든다. 여기서 열여섯 번째 선택은 ‘멈춤’이다. 그들이 잠깐만 멈췄다면, 혹은 “정말 그런가”를 확인하려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분노가 속도를 얻으면, 멈추는 게 가장 어려워진다. 너는 화가 치밀 때, 스스로 멈추는 연습을 해본 적 있니? (참고: 사도행전 7:57)
스데반은 성 밖으로 끌려가 돌에 맞는다. 여기서 열일곱 번째 선택이 또 나타난다. 그는 저주할 수도 있고, 살려달라며 상대를 자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기도한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고통 속에서 마지막으로 붙든 말이 ‘원망’이 아니라 ‘부탁’이었다는 게 놀랍다. 너는 아플 때,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무엇이니? (참고: 사도행전 7:59)
그리고 그는 더 놀라운 기도를 한다.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여기서 열여덟 번째 선택은 ‘용서’다. 용서는 감정이 정리돼서 나오는 말이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감정이 폭풍인 순간에, 믿음으로 건네는 결정이다. 스데반은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의 미래가 닫히지 않기를 바란다. 너는 상처를 준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의 회복을 바랄 수 있니? (참고: 사도행전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60, 개역개정)
그 자리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성경은 그가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의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열아홉 번째 선택이 사울에게 있다. 그는 정의를 지킨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정의가 누군가의 피 위에 세워질 때, 마음은 점점 단단해진다. 그날 이후 교회는 큰 박해를 맞고 흩어진다. 겉으로 보면 ‘패배’ 같지만, 한 관점으로는 복음이 더 넓게 퍼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너는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오히려 길을 여는 장면을 본 적 있니? (참고: 사도행전 8:1-4)
스데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 “교회는 커질수록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진실을 말하면서도 미움을 키우지 않을 수 있을까” “상처 속에서도 용서를 선택할 수 있을까.” 스데반은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갈등의 순간마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선택했던 사람처럼 보인다. 그 선택들은 우리에게도 조용히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선택 앞에 서 있니? (참고: 사도행전 6:8-15, 7:54-60)
성경은 스데반의 장례를 길게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경건한 사람들이 그를 장사하고 크게 울었다고 말한다. 그 울음은 단지 슬픔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우리 가운데 있었다”는 감사와 아픔이 섞인 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그 사람이 어떤 빛이었는지 깨닫곤 한다. 너는 오늘, 네 곁의 빛을 알아보고 있니? (참고: 사도행전 8:2)
스데반의 마지막 기록은 ‘돌에 맞아 죽었다’로 끝나지만, 그의 여운은 ‘용서했다’로 남는다. 한 관점으로는, 그의 기도가 사울의 마음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미워해야 마땅한 순간에 용서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마음은 언젠가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스데반의 퇴장은 조용하지만, 깊다. 너는 네가 떠난 자리에서 어떤 여운이 남기를 바라니? (참고: 사도행전 7:60, 8:1)
- 사도행전 6:1-7
- 사도행전 6:8-15
- 사도행전 7:2-8
- 사도행전 7:9-16
- 사도행전 7:17-34
- 사도행전 7:39-43
- 사도행전 7:44-50
- 사도행전 7:51-53
- 사도행전 7:54-60
- 사도행전 8:1-4
- 사도행전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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