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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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굴라

떠돌아야 했던 한 부부의 손길이 교회를 세웠다. 아굴라는 집과 일터를 내어주며 바울과 함께 복음을 길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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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아굴라는 큰 무대의 주인공이라기보다, 복음이 머무를 집을 마련한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는 “평범한 손”이 어떻게 교회의 길을 열었는지 보여준다.

짧은 훅: 만약 네가 하루아침에 도시에서 쫓겨난다면, 너는 무엇을 붙잡을까?


성경은 아굴라의 출생을 길게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가 “본도에서 난 유대인”이라고 알려준다. 이름 하나, 출신지 하나가 전부인 듯 보이지만, 그 짧은 소개 뒤에는 살아온 시간이 숨어 있다. 전해지는 배경을 조심스럽게 상상해보면, 그는 유대인의 율법과 절기, 회당의 리듬 속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 로마의 소문, 먼 항구의 사정들을 들으며 “세상은 넓고, 우리는 자주 흔들린다”는 사실을 일찍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기술을 익혔을 것이다. 천막을 만들거나 가죽을 다루는 일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어디로 가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작은 뿌리였다. (참고: 사도행전 18:2-3)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삶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크게 꺾인다. 로마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황제 글라우디오의 조치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성경은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지만, “명령”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공기가 느껴진다. 짐을 싸는 소리, 이웃의 한숨, 문을 닫는 상점, 떠나는 배의 냄새. 여기서 아굴라의 첫 번째 큰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분노에 머물 것인가, 생존을 위해 길을 잡을 것인가. 그는 브리스길라와 함께 로마를 떠난다. 억울함과 두려움이 섞였겠지만, “우리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서로를 붙잡았을까? 너라면 그 밤에 무엇부터 챙겼을까? (참고: 사도행전 18:2)

그들이 도착한 곳은 고린도였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 다시 손을 움직여야 한다. 다시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다시 집을 구해야 한다. 두 번째 선택은 여기서 나온다. 상처를 숨기고 조용히 살 것인가, 새로운 자리에서 관계를 열 것인가. 고린도는 다양한 문화와 욕망이 섞인 도시였다. “우리가 여기서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매일 따라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터를 열고 삶을 세운다. 너라면 낯선 도시에서 누구를 먼저 믿을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18:1-3)

바로 그때 바울이 고린도로 들어온다. 성경은 짧게 말하지만, 장면은 선명하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같은 손의 언어를 아는 사람들. 바울은 그들과 함께 머물며 일한다. 이 만남은 아굴라에게 세 번째 선택이 된다. 낯선 전도자를 경계할 것인가, 동역의 자리로 들일 것인가. 바울은 말이 강했고, 갈등도 따라오는 사람이었다. 함께하면 편안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굴라는 바울을 집과 일터로 받아들인다. 그 선택은 곧 “우리의 삶을 복음의 통로로 쓰겠다”는 결심과도 닮아 있다. 너라면 위험이 보이는 사람에게도 문을 열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18:3-5)

시간이 흐르며, 아굴라의 집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교회는 큰 건물보다 집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네 번째 선택이 여기 있다. 집을 지킬 것인가, 집을 나눌 것인가. 집을 열면 소문이 돈다. 소문이 돌면 눈이 따라온다. 하지만 그들의 집은 사람들의 마음을 쉬게 하는 등불 같은 곳이 된다. 믿음이 약한 이도, 낯선 이도, 질문이 많은 이도 들어올 수 있다. 그때마다 아굴라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를 다시 묻고, 또 다시 선택했을 것이다. 너라면 네 생활의 안전을 얼마나 내어줄 수 있을까? (참고: 로마서 16:3-5)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도 간다. 떠나야 하는 이유가 늘 기쁘기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익숙해진 고린도를 떠나는 다섯 번째 선택. 안정에 머물 것인가, 부르심을 따라 이동할 것인가. 삶이 이제 좀 자리를 잡았는데 또 떠난다. 이사라는 건 짐만 옮기는 일이 아니라, 관계와 추억과 두려움을 함께 옮기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길을 택한다. 너라면 “지금이 편한데”라는 마음을 어떻게 다룰까? (참고: 사도행전 18:18-19)

에베소에서 바울은 잠시 머물고 다시 길을 떠난다. 여기서 여섯 번째 선택이 이어진다. 지도자가 떠난 뒤에도 남아 지킬 것인가, 함께 떠나 안전을 택할 것인가. 바울이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불안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 남아 공동체를 돌보는 듯 보인다. 누군가는 말씀을 설명해야 하고, 누군가는 새로 오는 사람을 맞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교회는 자란다. 너라면 주목받지 않는 돌봄을 계속할 수 있을까? (참고: 고린도전서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며 그 집에 있는 교회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16:19, 개역개정)

이 한 구절은 아굴라의 삶을 조용히 보여준다. 교회가 “그 집”에 있다. 누군가의 집이 예배의 자리이고, 누군가의 식탁이 위로의 자리다. 하지만 집을 열면 비용이 든다.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마음도 닳는다. 그래서 일곱 번째 선택은 매번 되풀이된다. 손해를 감수하며 섬길 것인가, 적당한 선에서 멈출 것인가. 그때마다 그들은 “주 안에서”라는 방향을 붙잡았을 것이다. 너라면 섬김의 대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참고: 고린도전서 16:19)

에베소에서 아주 중요한 만남이 하나 더 등장한다. 아볼로라는 사람이다. 그는 열정적이고 말이 능했고, 성경을 잘 풀어냈다. 그런데 그의 이해에는 빈틈이 있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를 “데려다가” 더 정확한 길을 설명해준다. 여기서 여덟 번째 선택이 선명하다. 공개적으로 바로잡아 체면을 꺾을 것인가, 사랑으로 조용히 세워줄 것인가. 상대가 유명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조심스럽다. 틀렸다고 말하는 순간 관계가 끊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다툼이 아니라 성장으로 이끈다. 너라면 누군가의 열심을 꺾지 않으면서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참고: 사도행전 18:24-26)

그리고 로마서에서는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동역자”라 부르며, 그들이 바울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았다”는 표현을 남긴다. 정확한 사건은 성경이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맥락상, 바울의 사역은 종종 위협을 불렀고, 그 곁에 있던 이들도 위험을 함께 감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아홉 번째 선택이 있다. 자기 안전을 우선할 것인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사랑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너라면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 지금의 평안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참고: 로마서 16:3-4)

시간이 더 흐르며, 아굴라 부부는 다시 로마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다시 에베소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당시 로마의 상황이 달라지며 유대인들이 돌아갈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교회는 도시마다 연결되어 있었다. 열 번째 선택은 이런 이동 속에서 반복된다. 한 번 세운 자리에 집착할 것인가, 필요가 있는 곳으로 또 옮길 것인가. 삶은 “한 곳에서 오래”보다 “필요한 곳에서 충실”로 흐른다. 너라면 네 이력서보다 누군가의 필요를 더 크게 볼 수 있을까? (참고: 로마서 16:3-5)

마지막으로, 바울이 생의 끝자락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말한다. 이름은 뒤로 밀려나 있다. 큰 업적의 기록도 없다. 하지만 끝까지 관계 안에 남아 있다. 여기서 열한 번째 선택, 어쩌면 가장 조용한 선택이 보인다. 빛나는 자리로 가려 할 것인가, 마지막까지 곁을 지킬 것인가. 나이 든 손은 느려져도, 마음의 방향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너라면 떠나는 사람을 끝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참고: 디모데후서 4:19)

아굴라의 죽음이나 마지막 순간은 성경이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까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그의 삶은 “사라짐”이 아니라 “스며듦”으로 남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는 설교대 위의 사람이 아니라, 길 위의 사람이었고, 집 문 앞의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떠돌 때 함께 떠돌아주고, 누군가가 배우려 할 때 함께 배워주고, 누군가가 흔들릴 때 함께 붙잡아준 사람이다. 그건 화려하지 않지만 깊다. (참고: 사도행전 18:18-19)

아굴라를 한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는 복음을 일상으로 번역한 사람이다. 일터에서, 식탁에서, 손의 노동에서, 낯선 도시의 밤에서.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의 집은 누구에게 쉼이 될 수 있을까? 너의 기술과 시간은 누구의 믿음을 세우는 데 쓰일 수 있을까? 그리고 너는 오늘, 어떤 문을 열겠니?

  • 사도행전 18:1-3
  • 사도행전 18:18-19
  • 사도행전 18:24-26
  • 로마서 16:3-5
  • 고린도전서 16:19
  • 디모데후서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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