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는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에, 무너진 마음과 흐트러진 삶을 다시 묶어 세우기 위해 말씀을 들고 걸어온 제사장·서기관이었어요. 누군가에겐 너무 कठ해 보이고, 누군가에겐 꼭 필요해 보이는 선택들 사이에서, 그는 공동체의 중심을 다시 잡으려 했습니다.
만약 네가 먼 타국에서 살다가, 오래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돌아가 봤는데… 그곳이 생각보다 더 낯설고 더 혼란스럽다면, 너는 무엇부터 붙잡겠니?
에스라의 “출생 이야기”는 성경이 길게 들려주지 않아요. 하지만 그의 첫 등장은 이미 방향이 정해진 사람처럼 보여요. 그는 아론 계열의 제사장 가문에 속했다고 전해지고, 특별히 율법에 익숙한 서기관으로 소개돼요. 어릴 때부터 향 냄새가 배어 있는 제사장의 삶을 보며 자랐을 수도 있고, 포로지 바벨론에서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를 어른들 대화 속에서 수없이 들었을지도 몰라요. 그 이야들이 어떤 아이를 만들었을까요? “예배”만 남긴 게 아니라, “왜 예배가 무너졌는지”를 끝까지 파고드는 아이 말이야. (참고: 에스라 7:1-6)
그가 무엇을 붙잡고 살았는지는 짧은 한 문장에 응축돼 있어요.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에스라 7:10, 개역개정)여기서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에요. 연구하고, 살아내고, 가르치겠다는 세 갈래의 결심. 너라면 그 중 무엇이 제일 어렵겠니?
첫 번째 선택은 조용하지만 커요. 바벨론은 이미 정착한 사람들에게 “편한 일상”을 줄 수 있었거든요. 집도 있고, 일도 있고, 관계도 있죠. 그런데 에스라는 어느 순간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고정해요. 돌아간다는 건 낭만이 아니라 고생일 수 있는데도요. 그는 편안함과 사명 사이에서 사명을 고르는 사람이었어요. 너라면 익숙한 안정과 낯선 책임 중 무엇을 택하겠니? (참고: 에스라 7:6-8)
두 번째 선택은 더 구체적이에요. 왕 아닥사스다에게 허락을 구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아 길을 떠날 준비를 하죠. 그런데 막상 사람을 모아 보니 “레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요. 예배의 중심을 세우러 가는데, 예배를 섬길 사람이 비어 있는 거예요. 이때 에스라는 “그냥 가자”라고 대충 넘기지 않아요. 사람을 다시 보내 레위 사람들을 데려오게 하죠. 급함과 중요함이 부딪힐 때, 너는 어느 쪽을 우선하니? (참고: 에스라 8:15-20)
세 번째 선택은 길 위에서 일어나요. 긴 여정에는 위험이 따르죠. 그런데 에스라는 왕에게 군사와 마병을 요청하지 않기로 해요. 이유는 단순한 객기가 아니에요. 이미 왕 앞에서 “우리 하나님의 손이 그를 찾는 자에게 선을 베푼다”는 식으로 말해버린 상황이었거든요. 말과 삶이 맞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내 말의 신뢰”를 먼저 의심할 거예요. 그래서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길을 구해요. 말과 안전, 신앙과 현실이 맞부딪힐 때 너는 어떻게 균형을 잡겠니? (참고: 에스라 8:21-23)
네 번째 선택은 ‘돈’과 ‘신뢰’의 문제예요. 성전으로 가져갈 예물과 기물을 맡긴다는 건 엄청난 책임이죠. 에스라는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서 사람을 세워 저울로 달아 맡기고,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다시 달아 확인하게 해요. 신앙이 뜨거워도 시스템은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 같아요. 믿음과 절차, 둘 중 하나만 붙잡으면 왜 위험해질까? (참고: 에스라 8:24-34)
그리고 드디어 예루살렘. 여기서 에스라의 마음이 ‘툭’ 꺾이는 장면이 나와요. 도착하자마자 좋은 소식만 듣지 않거든요. 지도자들이 와서 말해요.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과 혼인했습니다.” 이 말은 단지 결혼 문제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경계와 정체성, 그리고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였어요. 그런데 그 당사자들이 “일반 사람”만이 아니에요. 어떤 경우에는 지도층이 앞장선 모습까지 드러나요. 네가 기대하던 공동체가 이미 흔들리고 있다면, 너는 어떤 표정이 되겠니? (참고: 에스라 9:1-2)
다섯 번째 선택은 ‘분노’가 아니라 ‘애통’으로 반응하는 선택이에요.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고, 멍하니 앉아 있죠. 여기에는 두 감정이 섞여 있어 보여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충격과, “우리 또 무너지는 건가?”라는 두려움. 사람을 세우러 온 사람이, 먼저 바닥에 주저앉는 장면이잖아요. 너라면 실망 앞에서 바로 고치려 달려들겠니, 아니면 먼저 울겠니? (참고: 에스라 9:3-4)
여섯 번째 선택은 ‘말을 잘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를 포함시키는 기도’예요. 에스라는 자기 죄를 고백하듯이 공동체의 죄를 말해요. “우리의 죄가… 우리의 허물이…”라고요. 지도자가 타인을 비난하는 자리로 서지 않고, 함께 무릎 꿇는 자리로 내려오는 거죠. 관계가 깨진 공동체에서, 누군가가 먼저 “내가 그 안에 있다”고 말하는 건 큰 용기예요. 너는 갈등이 터졌을 때, ‘남 탓’과 ‘함께 책임’ 중 어느 쪽으로 말이 흘러가니? (참고: 에스라 9:5-15)
이때 한 사람이 다가와요. 세가냐라는 사람이 “소망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죠. 여기서 일곱 번째 선택이 시작돼요. 에스라는 혼자 해결사가 되지 않고, 공동체가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언약’의 자리를 만들어요.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자.” 그런데 이 장면은 따뜻하기만 하지 않아요. 누군가에겐 너무 아프고, 누군가에겐 너무 무겁죠. 가정과 공동체, 사랑과 약속이 엉켜 있을 때, 무엇이 더 ‘옳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참고: 에스라 10:1-5)
여덟 번째 선택은 “감정의 폭발”을 “공적 절차”로 옮겨 담는 선택이에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 때가 겨울비가 오는 시기라 사람들이 떨고 있어요. 죄책감으로 떨고, 추위로 떨고, 앞으로 벌어질 일로 떨죠. 에스라는 그 떨림을 이용해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과 조사라는 절차를 세워요. “한 번에 끝내자”가 아니라, 날짜를 정하고 심사하게 하죠. 속전속결이 정의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정말 그럴까? (참고: 에스라 10:9-16)
아홉 번째 선택은 에스라가 가장 비난받기 쉬운 자리예요. 그 과정에서 실제로 가족이 해체되는 사례들이 언급되거든요. 성경은 이 대목을 길게 감정적으로 설명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어려워요.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라고 묻게 되니까요. 가능한 한 관점으로는, 당시 혼인은 종교적·사회적 동맹과 얽혀 공동체를 다시 우상으로 끌고 갈 위험이 컸고, 포로에서 막 돌아온 작은 공동체는 경계가 무너지면 금방 흩어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숫자로만 정리되지 않죠. 공동체를 지키려는 결단이 개인에게 상처로 남을 때, 우리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참고: 에스라 10:18-44)
열 번째 선택은 “정리 이후”에 있어요. 어떤 지도자는 문제를 해결하면 ‘성과’로 남기고 끝내요. 그런데 에스라의 진짜 목표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말씀을 다시 삶 속에 심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훗날 느헤미야 시대에, 백성 앞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해석해 주는 장면에서 에스라의 이름이 다시 떠올라요.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울죠. “우리가 너무 멀리 왔구나.” 그런데 그때 지도자들은 말해요. “오늘은 울 날이 아니라 기뻐할 날이다.” 에스라도 그 흐름에 함께 서요. 회개를 붙잡되 절망에 묶이지 않게 하는 선택. 너는 누군가가 울 때, 그 울음을 어떻게 다루니? (참고: 느헤미야 8:1-12)
에스라의 마지막은 성경이 길게 묘사하지 않아요. 어느 순간 기록의 앞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상상해볼 뿐이죠. 그는 아마 “큰 사건의 영웅”으로 남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말씀을 읽고 지키게 만드는 습관의 씨앗을 심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주목받지 않아도, 다음 세대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만족하는 마음 말이에요. 너는 어떤 방식으로 ‘남고’ 싶니?
그가 남긴 여운은 이거예요. 칼로 성을 세우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마음의 방향을 세우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늘 부드럽지 않다는 것. 가능한 한 관점으로는, 에스라는 ‘거룩’이라는 단어를 무기로 쓰지 않으려 했고, 대신 ‘말씀’이라는 거울로 공동체가 스스로를 보게 하려 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너는 지금, 무엇으로 너 자신과 네 공동체를 비춰 보고 있니?
- 참고 구절: 에스라 7:1-10
- 참고 구절: 에스라 8:15-36
- 참고 구절: 에스라 9:1-15
- 참고 구절: 에스라 10:1-17
- 참고 구절: 느헤미야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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