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은 분열된 이스라엘의 첫 북왕국 왕으로, 억눌림에서 벗어나려는 열망과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엇갈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로 읽힙니다.
만약 네가 어떤 날, “너에게 왕좌가 올 거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순간 너는 믿음으로 걸을까, 아니면 두려움으로 뛰기 시작할까?
여로보암의 이름이 성경에 처음 또렷하게 등장할 때, 그는 아직 왕이 아닙니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 쪽 사람으로 소개되고, 아버지는 느밧, 어머니는 스루아라고 전해집니다. 성경은 그의 어린 시절을 길게 설명하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상상해 보면 그는 어릴 때부터 “일을 해내는 방식”을 빨리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집안이 넉넉했는지, 부족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해야 했던 마음은 그의 손끝에 남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너는 어린 시절 어떤 습관 하나가 지금의 너를 만들었다고 느낀 적이 있니? (참고: 열왕기상 11:26)
솔로몬 시대의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겉으로는 화려합니다. 성전이 세워지고, 나라가 안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무거운 노동과 세금이 함께 움직입니다. 여로보암은 그 체제 안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눈에 띕니다. 솔로몬이 그를 불러 요셉 족속의 부역을 감독하게 했다는 말은, 그가 책임을 맡기면 결과를 내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갈등이 생깁니다. 능력을 인정받는 자리는 달콤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신음도 더 가까이서 듣게 만들죠.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체제에 충성할까, 아니면 사람들의 분노를 마음에 담아 둘까? (참고: 열왕기상 11:28)
그러던 어느 날, 길 위에서 예언자 아히야를 만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성경은 그 장면을 매우 상징적으로 들려줍니다. 아히야가 새 옷을 입고 있다가, 그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죠. “열 지파를 네게 주겠다”는 말은, 한 사람의 가슴을 단숨에 뜨겁게 만들 수도, 차갑게 만들 수도 있는 말입니다. 이 순간 여로보암의 두 번째 선택이 시작됩니다. 기회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두려운 시험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너라면 그 말을 듣고 밤에 잠이 왔을까? (참고: 열왕기상 11:29-31)
아히야의 말에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걸으면 견고하게 세워 주겠다는 약속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갈등이 더 생깁니다. “왕이 될 수 있다”는 소식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만, “어떤 길로 걸을 것인가”라는 조건은 사람을 멈추게 하거든요. 여로보암은 이 조건을 마음에 붙잡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왕좌라는 결과만 붙잡고 있었을까요? 너는 어떤 선택 앞에서 결과만 보고 달려간 적이 있니? (참고: 열왕기상 11:38)
이 이야기가 바로 성공담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곧 드러납니다.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경계하고, 결국 그를 죽이려 했다고 전해집니다. 여로보암은 살기 위해 도망칩니다. 세 번째 선택입니다. 남아서 맞설 것인가, 아니면 떠나서 때를 기다릴 것인가. 그는 애굽으로 달아나 시삭 왕 곁에 머뭅니다. 도망은 비겁함으로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도망은 생존이고, 어떤 도망은 준비가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 도망이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너는 도망친 뒤 마음이 더 단단해졌니, 더 거칠어졌니? (참고: 열왕기상 11:40)
애굽에서의 시간은 성경이 길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단정하지 못합니다. 다만 “기다리는 시간”은 보통 사람을 두 방향으로 보냅니다. 한쪽은 더 겸손해지고, 다른 한쪽은 더 계산적이 되죠. 여로보암이 어떤 방향으로 기울었는지는, 훗날 그가 왕이 된 뒤의 결정들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은 너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니?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여로보암은 돌아옵니다. 네 번째 선택입니다. 과거를 묻어 두고 조용히 살 것인가, 아니면 다시 무대 한가운데로 설 것인가. 그는 백성들과 함께 세겜에서 르호보암을 만나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갈등은 한 사람의 야심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숨소리로 커집니다. 르호보암은 완고한 말을 택하고, 백성들은 찢어진 마음으로 돌아섭니다. 너라면 그 자리에서 분노를 어떻게 다뤘을까? (참고: 열왕기상 12:1-16)
그리고 다섯 번째 선택이 폭발하듯 터집니다. 북쪽 지파들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웁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해방”으로, 어떤 사람은 “반역”으로 봅니다. 성경은 그 긴장을 그대로 두고 이야기를 흘려보냅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됩니다. 그런데 왕이 되는 순간, 그는 동시에 “잃을 것”도 생깁니다. 왕좌는 손에 잡히지만, 마음은 더 불안해질 수 있죠. 너는 어떤 자리를 얻었을 때 오히려 더 불안해진 적이 있니? (참고: 열왕기상 12:20)
왕이 된 여로보암은 나라를 다지기 시작합니다. 세겜을 건축하고, 브누엘도 세운다고 전해집니다. 여섯 번째 선택은 겉으로는 행정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마음의 선택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살게 할 것인가, 혹은 권력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 두 가지는 비슷해 보여도 방향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너는 안전을 말하면서 사실은 내 자리를 지키려 했던 적이 있니? (참고: 열왕기상 12:25)
그리고 가장 유명하고도 아픈 선택이 나옵니다. 여로보암의 마음에 두려움이 올라옵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예배하면 마음이 유다로 돌아갈까 봐 걱정합니다. 일곱 번째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길을 열어 둘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붙잡기 위해 길을 막을 것인가. 그는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벧엘과 단에 세웁니다. 그 순간 나라를 지키려는 계산이, 믿음을 흔드는 칼이 되어 버립니다. 너라면 “잃을까 봐”라는 두려움이 올라올 때 무엇을 만들어 붙잡고 있니? (참고: 열왕기상 12:26-30)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이라” (열왕기상 12:28, 개역개정)
이 장면은 단순히 우상 하나를 세운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장면으로 읽힙니다. 여로보암은 믿음을 편의로 바꾸는 길을 택합니다. 그는 레위 사람이 아닌 자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절기까지 새로 정합니다. 여덟 번째 선택입니다. 공동체가 무엇을 중심으로 움직일지 결정하는 권한은 막강합니다. 그 권한을 사용할 때, 그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편함이 항상 선함은 아니죠. 너는 편하다는 이유로 중요한 것을 바꾼 적이 있니? (참고: 열왕기상 12:31-33)
벧엘에서 제단에 서 있는 여로보암 앞에 “하나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제단을 향해 경고의 말을 전하고, 제단이 갈라지는 표징도 일어납니다. 아홉 번째 선택이 여기에 있습니다. 경고를 듣고 멈출 것인가, 아니면 권위로 눌러버릴 것인가. 여로보암은 손을 뻗어 “잡아라”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그의 손이 마르고 굳어 버립니다. 순간 왕의 권위가 무력해지고, 두려움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너라면 그 자리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참고: 열왕기상 13:1-4)
놀랍게도 여로보암은 그 자리에서 도움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죠. 그의 손이 다시 회복됩니다. 여기서 열 번째 선택이 아주 조용히 지나갑니다. 회복을 회개로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회복을 다시 통제의 도구로 삼을 것인가. 성경은 그가 돌아서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이것은 누군가를 깎아내리려는 문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위험을 피했다”로 만족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너는 위기를 지나간 뒤, 삶의 방향까지 바꾼 적이 있니? (참고: 열왕기상 13:5-6, 13:33-34)
시간이 지나 여로보암의 집에도 병이 찾아옵니다. 그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여로보암은 아내에게 변장을 시키고, 옛 예언자 아히야를 찾아가게 합니다. 열한 번째 선택입니다. 정직하게 도움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속이며 결과만 얻을 것인가. 변장은 ‘들키지 않기 위한 지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마음속에서 이미 “나는 있는 그대로로 서기 어렵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너는 도움을 구할 때, 있는 그대로 말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 때가 있니? (참고: 열왕기상 14:1-3)
아히야는 눈이 어두웠지만, 그 여인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무거운 말을 전합니다. 그 말은 개인의 슬픔과 나라의 죄가 함께 얽혀 있습니다. 아비야는 죽게 되고, 여로보암의 집은 결국 심판을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열두 번째 갈등이 생깁니다. “가족의 아픔”과 “공동체의 책임”이 겹칠 때, 사람은 흔히 한쪽만 붙잡고 싶어합니다. 여로보암은 어느 쪽을 붙잡았을까요? 너는 내 집의 문제를 핑계로 더 큰 책임을 미룬 적이 있니? (참고: 열왕기상 14:4-17)
여로보암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듯 보이지만, 그의 선택이 남긴 그림자는 길게 이어집니다. 성경은 이후 여러 왕들의 평가에서 “여로보암의 죄”라는 표현을 반복합니다. 이는 그를 한 사람의 악인으로 단정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한 번 만들어진 길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같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지 보여주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만든 습관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준다고 느껴본 적이 있니? (참고: 열왕기상 15:34, 열왕기상 16:19)
역대기의 기록을 따라가면, 유다 왕 아비야와 여로보암 사이의 전쟁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어떤 예배가 공동체의 중심인가”를 둘러싼 긴장으로 읽힙니다. 여로보암은 크게 패하고, 그의 세력이 꺾이는 장면이 전해집니다. 열세 번째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돌아설 틈을 찾을 것인가. 성경은 그가 다시 강해지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너라면 패배 앞에서 어떤 말로 자신을 설득했을까? (참고: 역대하 13:13-20)
여로보암의 마지막에 대해 성경은 길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정 기간 왕으로 있다가 죽고, 그의 아들 나답이 뒤를 잇지만 곧 왕조는 끊어집니다. 어떤 인생은 마지막 장면이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묻고 싶어집니다. 만약 여로보암이 두려움 대신 신뢰를 선택했다면, 그의 끝은 달라졌을까? 너는 지금, 끝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참고: 열왕기상 14:20, 열왕기상 15:25-30)
한 관점으로 여로보암은 “나쁜 선택을 한 왕”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억눌린 사람들의 목소리 가까이에 있었고, 왕이 된 뒤에도 나라를 지키려 했습니다. 다만 그 지키려는 마음이 두려움에 붙들릴 때,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묶는 길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여로보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너는 무엇을 잃는 게 무서워서, 스스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니?”
- 열왕기상 11:26-40
- 열왕기상 12:1-33
- 열왕기상 13:1-6
- 열왕기상 13:33-34
- 열왕기상 14:1-20
- 열왕기상 15:25-30
- 열왕기상 16:19
- 역대하 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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