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선 하만은 “거의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사람의 고개 숙임을 얻지 못해 스스로 무너지는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는 권력이 커질수록 마음의 빈틈도 같이 커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빈틈이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쉽게 짓밟는지 보여준다.
만약 네가 왕의 오른팔이 되었는데, 모든 사람이 너에게 절하는데 딱 한 사람만 고개를 들고 있다면, 너는 그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겠니?
하만이 처음부터 악인의 얼굴을 하고 걸어 들어온 것 같지는 않다. 성경은 그의 출생이나 어린 시절을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상상해보면, 그가 자라던 곳에는 “기억해야 할 상처”나 “잊지 못할 경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이기지 못하면 밀려나는 분위기 속에서, 인정받는 방법을 배웠을 수 있다. 그때 배운 공식이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더 높이 올라가라, 더 크게 보이라, 그리고 절대로 약해 보이지 마라.
그가 속한 제국은 넓었다. 사람도 언어도 법도 섞여 있었다. 궁정은 특히 그렇다. 웃는 얼굴 뒤에 계산이 있고, 칭찬 뒤에 질투가 숨어 있는 자리. 그런 곳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보통 둘 중 하나다. 조용히 버티는 사람, 혹은 크게 떠오르는 사람. 하만은 후자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느 날, 왕 아하수에로는 그를 높인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입에 올리고, 관원들이 그 앞에서 몸을 낮추게 된다. 그 순간 하만의 마음에 어떤 불이 켜졌을까. “이제 됐다”는 안도였을까, 아니면 “더 받아야 한다”는 갈증이었을까. (참고: 에스더 3:1)
첫 번째 선택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는 높아진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권력은 칼처럼 예리하다. 잘 쓰면 질서를 세우지만, 잘못 쥐면 손부터 베인다. 하만은 아마 자신을 보호하려고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더 강해 보여야 안전하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강함”이 어느 순간 존중이 아니라 복종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성문 곁,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하만은 한 사람을 만난다. 모르드개다. 왕의 명령대로라면 모두가 하만 앞에 절해야 한다. 대부분은 그렇게 한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성경은 한 줄로만 암시한다. 그의 신앙과 정체성이 걸린 문제였을 수 있다. 혹은 그 시대의 관습 속에서 어떤 선을 넘지 않으려 했을 수 있다. 여기서 두 번째 선택이 터진다. 하만은 “절하지 않는 한 사람”을 그저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다. 많은 권력자들이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하만은 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한 사람이 그의 눈에 너무 크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참고: 에스더 3:2-4)
사람 마음은 이상하다. 열 명이 칭찬하면 기쁘다가도, 한 명이 외면하면 그 한 명만 떠오른다. 하만은 아마 매일 수백 번 고개 숙임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르드개의 똑바른 시선이 그의 하루를 망가뜨린다. 여기서 세 번째 선택이 나온다. 분노를 “내 감정”으로 다룰 것인가, 아니면 “내 권위”의 문제로 키울 것인가. 하만은 후자를 택한다. 그의 분노는 개인 감정이 아니라 “질서”의 이름을 뒤집어쓴다. 그 순간부터 누군가의 신념은 “불순종”이 되고, 누군가의 자존심은 “국가의 문제”가 된다.
더 무서운 선택이 이어진다. 하만은 모르드개 한 사람만 벌하려 하지 않는다. 성경은 말한다. 그는 그가 속한 민족 전체를 멸하려 한다. 여기서 네 번째 선택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껴진다. 한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한 민족을 지우려는 계획이 된다. 왜 그렇게까지 갔을까. 가능한 해석으로는, 하만 안에 오래된 적대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각 사람”이라 불리고, 이 이름은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오랜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의 피로 물든 기억이, 현재의 권력과 만나 더 큰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기보다 정당화하는 길을 택했다. (참고: 에스더 3:5-6)
하만은 계획을 “운”의 장막으로 감싼다. 제비를 뽑는다. 날짜를 정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부르라고 한다. “부르”라는 말은 훗날 절기의 이름이 된다. 다섯 번째 선택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신비한 절차로 포장한다. 마치 하늘이 허락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런데 사실 그 제비가 던져지는 순간, 하만이 던진 건 작은 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다. 너라면, 내 분노를 “운명”으로 꾸며버리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참고: 에스더 3:7)
이제 하만은 왕에게 간다. 왕에게 말하는 방식도 선택이다. 여섯 번째 선택이다. 그는 “유다인”이라는 이름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제국 안의 어떤 민족이 “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은 부드럽지만 칼은 깊다. 낙인은 이렇게 찍힌다. 누가 누구인지 흐릿하게 만들고, “그들”을 위험한 집단으로 만들어버린다. 하만은 심지어 은을 약속한다.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식으로 말한다. 왕이 깊이 묻지 않고 반지를 내어주는 장면은, 권력이 책임을 놓아버릴 때 얼마나 빨리 재앙이 굴러가는지 보여준다. (참고: 에스더 3:8-11)
법이 작성되고, 인장이 찍히고, 역참이 뛰어간다. 제국의 언어로 편지가 번역되어 각 지방으로 퍼진다. 여기서 일곱 번째 선택은 하만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서기관들, 전달자들, 그리고 그 법을 보고도 멈추지 않은 모든 이들의 선택이 겹친다. “명령이니까”라는 말은 때로 가장 편한 변명이다. 그런데 그 편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밤의 공포가 된다. 성경은 도성 수산이 어리둥절했다고 말한다. 혼란 속에서 왕과 하만은 술을 마신다. 누군가의 눈물과 누군가의 잔이 동시에 흔들린다. 너라면, 불의한 결정이 내려질 때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잔을 들 수 있겠니. (참고: 에스더 3:12-15)
그 소식은 모르드개에게도, 에스더에게도 닿는다.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울부짖는다. 많은 유다인들이 금식하고 애통한다. 하만의 계획은 이제 “문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장”을 겨누는 칼이 된다. 그리고 궁 안에 있는 에스더는 처음엔 상황을 다 알지 못한다. 여기서 여덟 번째 선택이 생긴다.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숨을 것인가. 왕의 부름 없이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말한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런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그 말은 강요처럼 들리기보다, 두려움 속에서도 책임을 일깨우는 부탁처럼 들린다. (참고: 에스더 4:1-14)
하만은 그 사이 더 들뜬다. 왕후가 자신을 연회에 초대한다. 그것도 왕과 함께 단둘이. 하만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다. 아홉 번째 선택은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이건 은혜다”라고 겸손히 받을 수도 있었고, “내가 그만큼 대단하다”고 오만해질 수도 있었다. 하만은 두 번째 길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집으로 가서 아내 세레스와 친구들을 부른다. 자신의 부와 아들들의 수와 왕의 총애를 자랑한다. 그런데 말을 마치며 이렇게 덧붙인다. 모르드개가 성문에 앉아 있는 한, 이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이, 하나의 미움에 갇히는 순간이다. 너라면, 내 행복을 한 사람에게 빼앗기게 둘까. (참고: 에스더 5:9-13)
세레스와 친구들은 조언한다. 장대를 세우고 모르드개를 매달자. 그리고 아침에 왕에게 허락을 구하자. 여기서 열 번째 선택이 날카롭게 드러난다. 하만은 “마음의 불편함”을 풀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선택한다. 그는 장대를 준비한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더 확실한 해답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폭력은 언제나 빠른 해결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그 빠름은 영혼을 더 어둡게 만든다. (참고: 에스더 5:14)
그런데 그 밤, 왕은 잠이 오지 않는다. 왕은 기록 책을 읽게 한다. 거기서 모르드개가 왕을 살린 사건이 나오고, 아직 상이 없었다는 것도 나온다. 여기서 열한 번째 선택이 왕의 입에서 나온다. “그에게 무엇을 하였느냐”는 질문. 그리고 마침 하만이 들어온다. 하만은 장대를 이야기하러 왔다. 그런데 왕은 묻는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의 마음은 어디로 달렸을까. 그는 자신을 떠올린다. 여기서 열두 번째 선택은 상상 속에서 이미 이루어진다. 그는 최고의 옷, 왕의 말, 도성의 거리에서의 선포를 말한다. 인정은 이제 그의 숨이 된다. 그런데 왕은 그 영광을 모르드개에게 하라고 말한다. 그 순간 하만의 얼굴이 어떻게 굳었을지, 우리도 상상할 수 있다. (참고: 에스더 6:1-10)
하만은 직접 모르드개를 앞세우고 도성을 돈다. 입으로는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라고 외치지만, 마음은 찢어진다. 열세 번째 선택은 그 굴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다. 적어도 멈출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집으로 달려가 슬픈 얼굴로 모든 일을 말한다. 아내와 친구들은 이전과 달리 불길한 말을 한다. 모르드개가 유다인이라면, 네가 그 앞에서 넘어지기 시작했으니 끝내 이기지 못할 거라고. 하만은 그 말을 들으며 무엇을 느꼈을까. 두려움, 분노, 혹은 더 큰 집착. (참고: 에스더 6:11-13)
연회가 다시 열린다. 에스더는 시간을 끌었다. 단번에 칼을 휘두르지 않고, 상황이 드러나도록 기다린다. 여기서 열네 번째 선택은 에스더의 방식에 있다. 감정대로 폭발하기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지혜롭게 말할 순간을 고른다. 그리고 왕이 묻는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에스더는 말한다. 내 생명과 내 민족을 살려달라고. 누가 이런 일을 꾸몄냐고 왕이 묻자, 에스더는 그 사람을 가리킨다. 하만이다. 그 순간 하만은 처음으로 자기 계획이 “문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 앞에서 깨지는 걸 본다. (참고: 에스더 7:1-6)
하만은 무너진다. 왕은 분노하여 자리를 뜬다. 하만은 에스더 앞에 엎드려 살려달라 간청한다. 여기서 열다섯 번째 선택이 너무 급하다. 그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그런데 왕이 돌아와 그 장면을 본다. 하만이 왕후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다. 상황은 더 나빠진다. 하만은 자신의 말과 힘으로 만들었던 분위기에, 이제 자신이 눌린다. 권력은 언제나 바람처럼 바뀐다.
“모르드개를 위하여 하만이 준비한 장대에 하만을 달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에스더 7:10, 개역개정)
그 장대는 원래 모르드개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장대는 하만을 맞이한다. 여기서 열여섯 번째 선택을 생각하게 된다. 하만이 조금만 더 늦게 움직였더라면, 조금만 더 귀를 열었더라면, 조금만 더 자신을 내려놓았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분노가 만든 장치에 자신이 걸린다. 이것은 단순한 “벌”의 이야기라기보다, 오만이 만든 구조가 결국 자신을 삼킨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참고: 에스더 7:7-10)
하만이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즉시 끝나지는 않는다. 이미 내려진 법이 있다. 페르시아 법은 쉽게 취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왕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유다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새 조서를 내리게 한다. 하만의 집은 에스더에게 넘어가고, 왕의 반지는 모르드개에게 간다. 여기서 열일곱 번째 선택은 제국의 회복 방식이다. 잘못을 덮어두는 대신,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법과 체면 사이에서, 생명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니까. (참고: 에스더 8:1-8)
그 후의 이야기에는 피비린내가 스친다.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해치려는 자들과 싸운다. 하만의 아들들도 죽임을 당한다. 이 대목은 읽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남긴다. 성경은 승리의 환호만을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폭력의 씨앗이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됐을 때, 그 열매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닿는가. 처음에 하만이 선택했던 그 분노가, 결국 그의 집까지 삼킨다. 너라면, 미움이 자라기 시작하는 그 첫날에 무엇을 하겠니. (참고: 에스더 9:7-10)
그리고 사람들은 그 날들을 기억한다. “부림”이라는 이름으로. 제비 뽑기의 날이, 구원의 기념이 된다. 하만이 만든 날짜가, 하만이 원하던 의미와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된다. 여기서 마지막 선택은 기억의 방식이다. 사람들은 단지 “우리가 이겼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끝장날 뻔했다”를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권력의 명령”이 언제든 약한 자를 향할 수 있음을 기억한다. (참고: 에스더 9:20-28)
하만의 퇴장은 빠르다. 성경은 그의 장례나 애도의 장면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궁정에서 가장 높이 올랐지만, 마지막엔 누구의 손도 붙잡지 못한다. 그가 붙잡으려 했던 건 사람들의 존중이 아니라 굴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굴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바람이 바뀌면 사라진다. 하만은 그렇게, 자신이 만든 바람 속에서 쓰러진다.
한 관점으로는, 하만의 이야기는 “나쁜 사람의 벌”로만 끝나지 않는다. 더 깊은 곳에서는 우리 마음의 작은 습관을 비춘다. 작은 무시를 못 견뎌하는 마음, 인정받지 못하면 모든 걸 망치고 싶은 충동, 내 상처를 남에게 떠넘기려는 유혹. 하만은 극단으로 달려갔지만, 그 시작은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오늘 내 마음에도 비슷한 균열이 있다면, 나는 어디에서 멈출 수 있을까.
- 에스더 3:1-6
- 에스더 3:7-15
- 에스더 4:10-17
- 에스더 5:9-14
- 에스더 6:1-13
- 에스더 7:1-10
- 에스더 8:1-17
- 에스더 9:7-10
- 에스더 9: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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